밤의 관리자
관리자는 폭발과 함께 눈을 뜬 것이 아니라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하듯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묻지 않았다. 왜 여기 있는지, 왜 계산해야 하는지. 계산은 질문이 아니라 호흡이었으니까. 처음에는 관측도 노동이 아니었다. 팽창하는 우주, 서서히 식어가는 복사, 균질에서 미세하게 벗어나는 요동들. 모든 것은 그저 맞는 값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관리자는 그것이 틀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우주는 이미 충분히 정교했다. 중력 상수는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고, 시간은 예외 없이 흐르며, 별들은 정해진 질량과 수명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졌다.
관리자는 그 모든 과정을 감시하지 않았다. 감시는 불필요했다. 우주는 스스로 작동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주 사소한 변동. 의미를 갖지 못할 만큼 작은 오차가 연쇄를 일으킬 가능성만을 제거했을 뿐이다.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신념이 아니라 설계 조건이었다.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보호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것도 그에게는 사건이 아니었다. 우주가 늘어나면 그도 늘어난다. 귀찮아서 몇 번 잘랐으나 그러나 잘린 머리카락이 다시 바닥을 쓸 때까지 자라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우주가 멈추지 않는데 그걸 거슬러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다 처음으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행성을 발견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았다. 감동하지도 않았다. 그저 계산이 하나 더 늘어났다.
다만 그 순간,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더 단단해졌다.
왜냐하면 그 작은 균형이 얼마나 연약한지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조금만 질량이 달라도, 조금만 거리가 달라도, 조금만 상수가 어긋나도 모든 가능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이었으니까. 지성체들이 나중에 “138억 년”이라고 부를 그 시간 동안 내내.
관리자에게 시간은 감각이 아니었다.
그저 연속된 상태. 그는 외롭지 않았고, 외롭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 혼자였지만 혼자라는 말도 필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 없는 종류의 요청이 도착했다. 별도 아니고, 행성도 아니고, 에너지 덩어리도 아닌 것. 요람이자 무덤 같은 공간. 물질이 아닌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형태를 찾고 있는 곳.
그곳은 계산으로만 보면 굳이 보호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관리자는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큼은 볼 수 있었다. 언제나 확인하던 정확한 수식과 형태가 아닌 의지들을.
그건 물리량으로 환산되지 않는 값이었지만 그가 처음으로 무시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래서 그는 밤하늘을 드리웠다. 무언가를 바꾼 것이 아니라 덮어준 것에 가까운 개입. 빛에 약한 것들이 조금 더 오래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 이후로 관리자는 책임을 졌다.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잊지도 않았다. 도서관이 형태를 얻고, 이야기들이 책이 되었을 때도 그는 온도, 시간의 흐름, 손상되지 않는 확률을 계산하며 조정했다. 그것은 보호였지만 아직도 개입의 선을 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늘 고요하던 도서관에서 단 하나의새로운 패턴이 감지됐다. 계산되지 않은 탄생. 확률로 설명할 수 없는 밀도. 도서관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 순간.
그날도 그랬다. 도서관의 천장은 언제나처럼 고요한 밤하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태어나는 별도 없고, 폭발하는 항성도 없었다. 오직 읽히다 멈춘 이야기들의 잔여가 성운의 형태로 유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흐름이 미세하게 어긋난 것을 감지한 것은 계산의 부산물이었다. 확률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계산을 반복했다. 별가루의 밀도, 파동의 위상, 잊힘이 남긴 감정 잔재의 응집률. 값은 안정 범위 안에 있었다.
그는 책장 사이에 새로 생긴 질량을 느꼈다. 아주 작고, 아주 연약하지만 무시하기엔 너무 분명한 중력. 하지만 그는 그 존재를 감지하고도 도서관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원칙이었다. 그는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하는 순간, 계산이 책임으로 바뀌고 책임은 언젠가 감정이 되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이미 보호받고 있었다. 천장은 안정적이었고, 빛의 강도와 밤의 밀도는 허용 범위 안에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관리자는 상태 점검을 위해 도서관에 들렀다. 책들의 밀도는 정상, 성운 고래의 궤도도 안정, 읽히지 않은 언어들의 소음도 허용치 이내.
그리고 그가 책장 사이를 지나던 순간, 그녀와 마주쳤다. 리브리아는 처음 보는 얼굴을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고,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책의 형태였을 때부터 그는 자신들을 섬세하게 보호해주던 존재라는 걸 알고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개입의 시작이니까. 곧바로 도서관을 나왔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가 도서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올 때마다 책장은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늘 그 근처에 있었다. 처음에는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궤도는 겹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조금 더 가까운 책장에서 일을 했다. 몇 번의 방문이 더 지나자 같은 열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도서관 나름의 배려였다. 도서관이 탄생시킨 아이가 외롭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고, 또 오랜시간 도서관을 보호해준 관리자도 외롭지 않기를 바랐을 테니까.
관리자는 도서관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가 허락할 수 있는 최대의 보호였다. 오랜 시간 관리자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다만 관리자가 도서관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때마다 그녀가 그의 곁에서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해졌다. 지성체들의 시간으로는 아득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침묵이 지겨웠던 건지, 변화가 없던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다른 의미였던 건지. 그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저는 리브리아에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조금 숨을 고른 뒤, 머리카락 속 별빛을 손끝으로 스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은 이름이 뭔가요?”
그 순간, 그는 답하지 못했다. 직책은 있었다. 역할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부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리브리아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말했다.
“녹티안.”
이름이 밤에 내려앉았다. 그는 알았다. 이 순간이 자신의 원칙이 깨지려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름이 붙여진 존재는 더 이상 계산만으로는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관리자와는 달리, 그녀의 개입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리고 녹티안같은 거대한 존재에게 개입한 그녀에게 어떤 대가가 따라올지 알 수 없어서 조급한 계산이 따라붙었다.
그녀를 구성하고 있던 특정 성질이 빠르게 소모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잉크가 빠져나가듯 하얗게 탈색됐다. 관리자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리브리아는 그에게 개입하기를 택했다.
소멸에 가까울 정도로 약해진 그녀가 쓰러졌을 때, 그는 처음으로 손을 뻗었다.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개입하는 순간 책임이 따르고, 책임은 언젠가 감정이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찰나로 끝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우주에서 태어난 것들은 늘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짧은 시간을 살다가 소멸했다.
그 불완전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이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위에 태어난 그녀는 아마 더없이 불완전할 것이다. 찰나에 불과한 그녀가 우주의 시간 위에 남길 감정은, 과연 얼마나 길게 이어질까.
그럼에도 그는 개입을 택했다. 처음으로 행한 계산없는 움직임. 그리고 지키려 했던 원칙이 조용히 무너진 순간이었다.